삼포, 오포, 칠포, 그러더니 이젠 ‘N포 세대’라는
말이 아무렇잖게 통용되고 있다. 연애나 결혼, 출산 등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이 격렬한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만 하는 버거운 것으로 인식되면서 젊은 층들은 차라리 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웃 일본은 우리와 여러 모로 비슷하다. 그들은 유래 없는 고령화를
겪었으며, 혼밥, 혼술 등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이
되어버린 혼자 무언가를 하는 문화 또한 일찌감치 꽃 피웠다.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인 줄 알았더니 일본 또한 비슷한 듯했다. 우리나라에서건 일본에서건 결혼은 이제 필수 아닌 선택이다. 책은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가 허심탄회하게 나눈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화를 접하며 나는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는 게 왜 문제인지를 묻게 되었다. 욕망을 포기해서? 개개인의 욕구 실현을 고민할 정도로 정부가 한가할
리는 없다. 서구 사회에서야 꼭 결혼이 아닐지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법적으로 엮이지 않은 남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해 비난 일색조의 분위기가 형성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마치 표준 모델처럼 여기고 있다. 만일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았다거나, 결혼을 했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은 경우,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으나
헤어졌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등에 대해서는 비정상이라며 낙인을 찍는다.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게
정답”이라며 얼른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것을 요구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다.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는 사적 영역에 정부가 이토록 공을 들이는 까닭은 인구가 곧 노동력이자 국력이라는
식의 사고를 정부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제 입장이 마치 객관적인 무언가라도 되는
양 전파할 수 있는 정부의 힘은 막강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은 정부의 입장을 좇아 결혼을 않고 아이를 안 낳는 사회라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대고는 한다. 그렇게 개인의 선택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행위로 전락하고야 만다. 하지만 비혼은 비정상이기에 앞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저자들은 ‘결혼하면 손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심히 살폈다. 여전히 많은 부분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게 여성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육아를 위한 인프라가 충분치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딸이 낳은 자녀를 노부모가 돌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혼자 남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판단도 선다. 어차피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였다.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 이를 테면 결혼을 했지만 외롭다거나 배우자로서는 돈 많고 명 짧은 이가 최상이라는 둥,을 고려한다면 굳이 결혼을 꼭 해야만 할 필요성은 없지 싶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복안들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기 마련인데, 이 경우에도 이러한 인간의 습성(?)은 고스란히 반영됐다. 아이를 더 낳으면 수당을 더 준다는 식의 방식은 명쾌하다. 성과
측정 또한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가 선호한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누군가는 분명 소외를 경험한다. 모든 인구에게 효과가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정책을 발굴해 시행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 과정이 누군가를 다른 이들보다 우월 혹은 열등하다는 판단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비혼도, 결혼도, 출산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모든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우린 지향해야 할 것이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지.
나이 들면 애도 못 낳을 텐데 얼른 결혼해.
결혼하고 애를 낳아봐야 인생이 완성되는 거야.
온갖 결혼 압력에 질린 이들을 위한,
입담 센 두 사회학자의 조언!
몇 년 전까지도 ‘비혼’은 낯선 단어였다. ‘기혼’과 ‘미혼’이라는, 결혼을 당연하게 여기는 표현만 두루 쓰였을 뿐. 그런데 한 언론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에서 2016년 사이 SNS상에서 비혼을 언급한 비율이 약 700퍼센트가량 늘어났다. 또 결혼 관련 설문 조사에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자가 55퍼센트를 넘었다. 이쯤 되면 비혼이라는 말이 이미 우리 사회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지금을 ‘비혼 시대’라고 해도 무리 없을지 모른다. 그런 우리 시대를 다룬 책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는, 입담 좋은 두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이다.
두 사람은 비혼 및 결혼을 둘러싼 사회 변화, 가족관계의 변모, 저출산 문제 등을 넘나들며 풍부한 논의를 펼친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생각은 같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며, 비혼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두 사람은 개인 경험과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반박하고, 비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지혜를 제공한다. 비혼을 지향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 특히 결혼하라는 압력에 질린 여성들은 두 사회학자의 이야기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천의 말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
한국의 독자들에게 우에노 지즈코, 미나시타 기류
머리말 우에노 지즈코
1장 지금은 비혼 시대
비혼이라는 낙인 | 결혼 소망은 여전하지만 혼인율이 떨어졌다 | 적극적 싱글의 증가 | 싱글의 실태 | 결혼하면 손해본다 | 보수화, 전업주부 지향이 만혼을 늘리다 | 여성의 적극적인 비혼은 합리적 선택이다 | 고소득층 남성에게 가족은 위험 부담이다 | 큰 전환점이 된 고도성장기 | 산업의 공업화로 혼인율이 상승했다 | 모두 결혼하던, 보기 드문 시대 | 평생 결혼 못 할 거라고 불안해하는 여대생들 | 전업주부를 바라는 여성이 늘어나는 이유 | 거세되지 않은 아들과 딸 | 신붓감 선호 조건이 바뀌었다 | 일반 가정에 가정부가 있던 시절 | 보수적인 결혼관이 비혼의 원인이다 | 왜 동거, 사실혼이 늘어나지 않는가? | 1960년대에는 32세도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
2장 싱글 사회와 저출산 시대를 맞이하다
사회보장에 싱글이 낄 자리는 없다 | 가족관이 보수적인 나라일수록 저출산이 진행된다 | 한부모 여성 가장 때리기 | 어린이집 입학은 수혜가 아니라 권리다 | 연애결혼 실태는 ‘끼리끼리 결혼’ | 고도성장기에는 기업에서 짝을 맞춰 결혼했다 | 고도성장기에 결혼으로 팔자 고친 남자들 | 고독한 남성 | 배우자 선택의 의사 결정자가 부모에서 본인으로 바뀌었다 | 베이비 붐 세대의 결혼 시기는 출산율 절정기 | 육아 지원에 우호적이지 않은 베이비 붐 세대 |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언전 사고 이후 주부들의 고민 | 과거 40년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 여성 차별 사회가 아니라 남성 우대 사회다 | 우대 받고 살아온 남자들 | 남녀 학력 격차는 능력 차이가 아니라 부모의 투자에 따른 결과다 | 여성 의사와 변호사가 급증한 이유 | 결혼 후 일하지 않는 여자 의사들 | 머리 좋은 여자가 ‘여자’에게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다 | 능력 좋은 여자들이 종전의 남성 중심 사회를 존속시키다 | 육아를 하지 않는 남편들 |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그를 위해 봉사하는 아내들 | 아이 아빠에게 기대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기대는 육아 | 아이가 태어나도 생활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 남자들 | 아내의 체념으로 유지되는 부부 생활 | 소통하지 않는 부부를 재생산하는 가정 | 둔감한 남편들 |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없는 부모들 | 공동육아 | 대인 관계 기피와 관혼상제의 상품화 | 급증한 아이들의 자해 행위와 섭식 장애
3장 비혼 시대 가족의 초상, 부모 자식 관계의 진실은?
자녀를 결혼시키고 싶으면 경제적 지원을 끊고 집에서 내쫓아라 | 비혼과 저출산으로 힘든 건 재계뿐이다 | ‘3년 육아휴직 계획’은 여성의 사회 복귀를 막는 시책이다 | 10대의 임신율과 중절률이 높아졌다 | 공동 친권의 문제점 | 사회가 육아에 비용을 지불하는 나라들 | 변화가 없고 변할 수 없는 나라 | 남자다움, 여자다움의 재생산 | 회사에서 사육되는 남자와 집에서 사육되는 여자의 결혼 생활 | 육아 때문에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
4장 패배자 남성, 성장한 여성 문화
비혼이 아니라 ‘혼전 이혼’ | 상류계급이라 할 수 있는 전업주부 | 여성 문화를 성장시킨 시장 | ‘패배자 남성’이라는 비참한 존재 |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돌에 정신이 팔려 결혼하지 않는 게 아니다 | 스토리 소비는 어느 시대나 있었다 | 실패했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남자들 | 남성의 병리는 인기가 있으면 다 해결되나 | 돈과 권력이 있으면 여자가 따라오는 남자 | 남자들은 인기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다 | 남성성을 버리면 편하다 | 페미니즘은 불편한 진실을 밝혀왔다
5장 비혼 시대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다
남자에게 편리한 여자들이 나타났다 | 돈이 애인을 만들 수 있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 여성은 대부분 이성애자라고 할 수 없다 | 데이트 매뉴얼 | 성 소수자도 혼자가 될 준비를 한다 | 히키코모리 | 사회적 자본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 이혼 손익계산서 | 남자의 응석 구조란 | 1990년대에 남자들이 빠진 ‘치유파 여자 연예인’ | 더는 아들의 롤모델이 아닌 아버지
6장 비혼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혼과 출산이 분리되지 않은 사회 | 인간은 왜 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결혼과 출산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 | 낳지 않는 이기주의는 낳는 이기주의에 패한다 | 주체적으로 욕망하지 말라는 억압 | 지금까지 언어화되지 못한 ‘엄마와 아들’ 관계 | ‘엄마와 아들’ 관계에서 보이는 기분 나쁜 도착 | 부모에게서 분리되지 않는 아이들 | 비혼도, 결혼도, 출산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맺음말 미나시타 기류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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